세계유산 산업유산
일본 근대화를 뒷받침한 제사 산업의 역사를 보존된 건물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AI 요약
이 내용은 AI가 생성한 요약입니다. 운영 시간, 요금, 휴관일은 공식 정보를 확인해 주세요.
메이지 시대 근대화를 보여주는 세계유산으로, 웅장한 건물과 산업사의 의미를 짧은 시간에도 느낄 수 있습니다.
도미오카 제사장은 1872년에 문을 연 관영 모범 기계제사장입니다. 프랑스 기술을 도입한 목골 벽돌 건물들이 남아 있어 일본 산업화의 역사를 엿볼 수 있습니다. 건물 외관을 중심으로 둘러보며 해설을 들으면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일본 근대화를 뒷받침한 제사 산업의 역사를 보존된 건물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목재와 벽돌을 결합한 독특한 건축 양식이 볼거리입니다.
가이드나 음성 안내를 활용하면 외관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기 쉽습니다.
다카사키 방면에서 반나절 일정으로 방문해 제사장을 둘러본 뒤 도미오카 시내를 가볍게 산책하는 코스가 무난합니다.
토미오카 제사장(富岡製糸場)은 메이지 5년(1872년)에 메이지 정부가 일본의 근대화를 위해 설립한 모범 기계제사장입니다.
메이지유신 후 정부는 일본을 외국과 대등한 입장에 두기 위해 산업과 과학기술의 근대화를 추진했습니다. 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특히 힘쓴 것이 생사의 수출이었습니다. 정부는 생사의 품질 개선과 생산 향상, 그리고 기술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서양식 제사 기계를 갖춘 관영 모범 공장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토미오카 제사장이 건설되었고, 현재까지 거의 변함없는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 토미오카 제사장 설립의 목적과 배경
에도 시대 말기, 쇄국 정책을 바꾼 일본은 외국과 무역을 시작합니다. 당시 가장 큰 수출품은 생사였습니다. 생사 수출이 급증하면서 수요가 높아진 결과, 질이 낮은 생사가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조악남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는 생사의 품질 개선 요구와 함께 외국 자본에 의한 제사장 건설 요청도 제기되었습니다.
메이지유신 후 부국강병을 지향한 정부는 외화를 확보하기 위해 생사의 품질 개선과 생산 향상을 서둘렀습니다. 그러나 당시 민간 자본으로 공장을 건설하는 것은 어려웠기 때문에, 서양식 제사 기계를 갖춘 관영 모범 공장을 세우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모범 공장의 기본적인 생각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서양식 제사 기술을 도입하는 것, 둘째, 외국인을 지도자로 삼는 것, 셋째, 전국에서 여공을 모집하여 교육을 마친 여공은 출신지로 돌아가 기계제사의 지도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고용된 프랑스인 폴 브뤼나의 지도 아래, 서양 기술을 도입한 관영 모범 기계제사장(토미오카 제사장)이 설립되었습니다.
▶ 설립지로 토미오카가 선택된 이유
토미오카 제사장 설립 계획을 담당한 정부 관리 중 한 명인 오다카 준추(尾高惇忠)와 폴 브뤼나 등이 무사시·고즈케·시나노 지역을 조사한 뒤, 다음과 같은 이유로 고즈케의 토미오카를 부지로 결정했습니다.
1. 토미오카 인근은 양잠이 활발하여 생사의 원료인 양질의 고치를 확보할 수 있다.
2. 공장 건설에 필요한 넓은 토지를 마련할 수 있다.
3. 제사에 필요한 물을 기존의 수로를 이용해 확보할 수 있다.
4. 증기기관의 연료인 석탄을 가까운 다카사키·요시이에서 채굴할 수 있다.
5. 외국인 지도에 의한 공장 건설에 대해 지역 주민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었다.
▶ 토미오카 제사장의 변천
토미오카 제사장은 국가가 세운 대규모 기계제사 공장으로, 길이 약 140m에 이르는 제사소에는 300개의 제사기가 늘어서 당시 제사장으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였습니다.
토미오카 제사장의 건설은 프랑스인 지도자 폴 브뤼나의 계획서를 바탕으로 메이지 4년(1871년)부터 시작되었고, 이듬해인 메이지 5년(1872년) 7월에 주요 건조물이 완성되었으며, 10월 4일에는 가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고치에서 생사를 뽑아내는 제사소에서는 전국에서 모인 전습 여공들이 일하며 본격적인 기계제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외국인 지도자가 떠난 메이지 9년 이후에는 일본인만으로 운영되었습니다. 관영기 동안의 경영이 반드시 흑자만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고품질에 중점을 둔 생사는 해외에서 높이 평가받았습니다.
기계제사의 보급과 기술자 양성이라는 당초 목적이 달성될 무렵, 관영 공장의 불하 방침에 따라 메이지 26년(1893년) 미쓰이 가문에 매각되었습니다. 그 후 메이지 35년(1902년)에는 하라 합명회사에 양도되었고, 고품질 생사의 대량 생산과 잠종의 통일 등으로 주목받았습니다. 쇼와 13년(1938년)에는 주식회사 토미오카 제사소로 독립했으나, 쇼와 14년(1939년)에는 일본 최대의 제사회사였던 가타쿠라 제사방적 주식회사(현 가타쿠라 공업 주식회사)에 합병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자동 제사기가 도입되어 오랫동안 제사 공장으로 활약했지만, 일본 제사업의 쇠퇴와 함께 쇼와 62년(1987년) 3월 마침내 가동을 중지했습니다. 가동 중지 후에도 가타쿠라 공업 주식회사에 의해 대부분의 건물이 소중히 보관되었고, 헤이세이 17년(2005년) 9월에 건조물 일체가 토미오카시에 기증되었으며, 이후 토미오카시가 보존·관리하고 있습니다.
헤이세이 17년 7월에는 국가 사적으로, 헤이세이 18년(2006년) 7월에는 주요 건조물이 중요문화재로, 헤이세이 26년(2014년) 6월에는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되었습니다. 또한 같은 해 12월에는 제사소, 서쪽 고치 보관소, 동쪽 고치 보관소의 3동이 「국보」가 되었습니다.
▶ 현재의 토미오카 제사장
현재 토미오카 제사장은 토미오카시가 소유하며 보존 수리와 정비·활용 등의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활용의 일환으로 일반 공개를 하고 있으며, 토미오카 제사장의 역사와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전하고 귀중한 유산으로서 후세에 남기는 의의를 이해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토미오카 제사장 견학은 외관 견학이 중심이며, 외관만으로는 115년간의 가동 역사와 산업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알기 어렵기 때문에 해설원의 가이드 투어나 음성 가이드 기기를 통한 안내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보존 수리 및 정비·활용에 대해서는 2008년과 2012년에 책정한 보존관리계획 및 정비활용계획을 바탕으로,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의 지도와 조언을 받으며 관계 기관과 협의하면서 향후 30년 계획으로 보존 수리 공사와 함께 정비·활용을 진행해 나갈 예정입니다.
▶ 와다 히데(和田 英, 구 성: 요코타)
나가노현 마쓰시로정 출신의 사족 요코타 가즈마의 딸로, 토미오카 제사장에서 기술을 배운 전습 여공으로 활약한 여성입니다. 메이지 6년(1873년)에 토미오카 제사장에 입장하여 열심히 기계제사 기술을 배우고, 지역의 사이조무라 제사장(후의 로코샤)에서 기술 지도자로 활약했습니다.
요코타 히데가 메이지 40년(1907년)에 토미오카 제사장에서의 생활을 회상한 것이 『토미오카 일기』로 출판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