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쿠라 대불 전광사
기본 정보
- 관광지 이름
- 가마쿠라 대불 전광사
- 위치
- 〒248-0016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 하세 4초메 2반 28호
- Access
- 에노시마 전철 '하세역'에서 도보 7분
JR 가마쿠라역 동쪽 출구 버스 정류장에서 대불 방면 버스를 타고 '대불前' 하차 후 도보 1분
JR 가마쿠라역 서쪽 출구에서 도보 30분 - 주차장
- 주변 유료 주차장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영업시간
- 개장 시간
4월~9월
오전 8시 ~ 오후 5시 30분
10월~3월
오전 8시 ~ 오후 5시
입장은 폐장 15분 전까지 가능합니다. - 요금
- 일반, 중・고등학생 300엔
초등학생 150엔
대불 태내 관람료 50엔 - 연락처
- 전화번호:0467-22-0703
- 공식 사이트
지도
상세 정보
鎌倉 대불전 고도쿠인(대이산 고도쿠인 청정선사(しょうじょうせんじ))는 카마쿠라시 나가하세에 위치한 정토종의 사원으로, 국보인 "구리로 만든 아미타여래 좌상", 즉 카마쿠라 대불을 주존으로 하고 있습니다. 창건의 정확한 시기나 사정은 명확하지 않지만, 에도 시대에 정토종의 고승 유우텐 상인과 양국 상인에 의해 재흥된 이후, 정토종 사원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정토종은 법然 상인을 종조로 삼고, "남무아미타불"을 염불하며 모두가 아미타여래의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고도쿠인의 아미타여래 좌상도 무가 정권과 민중의 평안,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구제를 기원하여 세워졌다고 전해집니다.
■ 조성의 역사와 "수수께끼에 싸인 대불"
카마쿠라 대불은 구리합금으로 주조된 상의 표면에 금박이나 금도금을施하여 "금동불"로 분류됩니다. 북조(北条) 도쿠소 가문의 정사『아즈마 카가미(吾妻鏡)』에는 1252년(건장 4년)에 조성이 시작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 해가 대불 조성의 기준년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저자나 실제 제작 체제, 주조의 상세한 과정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지금도 많은 부분이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아즈마 카가미』에는 또한 1252년 이전의 1238년(력진 원년)에 "대불전 사업 시작"이 있었고, 막부의 명에 따라 권유가 진행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에 의해 카마쿠라 대불의 조성에는 카마쿠라 막부의 주도가 있었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최초로 만들어진 것은 목조 대불이며, 1243년(관원 원년)에는 대불과 대불전이 완공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 후 약 10년이 지나 현재의 금동불로 다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이유나 세부 사항은 명확하지 않아 카마쿠라 대불의 역사에 큰 수수께끼를 남깁니다.
■ 규모와 구조 ― 일본을 대표하는 대불
카마쿠라 대불의 상 높이는 약 11.3미터(좌 높이 11.31미터), 대좌를 포함한 총 높이는 약 13.35미터에 이르며, 중량은 약 121톤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당당한 모습은 나라 도다이지의 여래상과 함께 "일본 3대 대불" 중 하나로 여겨지며, 카마쿠라에서 유일한 국보 불상입니다.
대불 내부는 공허한 구조로, 관람료를 납부하면 태내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태내의 내벽에는 격자 모양의 주조 흔적이 남아 있으며, 약 40회에 걸쳐 동을 주조한 흔적이 보입니다. 각 주조 부분을 연결하고 강화하기 위해 "주조(いからくり)"라는 기법이 사용되어, 카마쿠라 시대의 높은 주조 기술을 체감할 수 있습니다. 또한 대불 뒷면에는 두 개의 개구부가 있어, 주조 당시의 흙이나 틀을 빼내기 위해 설치된 것이며, 현재는 태내 관람 시의 채광 창으로 유용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 대불전의 붕괴와 "노좌의 대불"
원래 카마쿠라 대불은 대불전 내부에 안치되어 있었으나, 14세기 이후 여러 차례의 자연재해로 인해 전당이 훼손되었습니다. 『태평기』와 『카마쿠라 대일기』에는 1334년(건무 원년)과 1369년(응안 2년)의 강풍 피해, 그리고 1498년(명응 7년)의 대지진·대해일로 인해 대불전이 큰 피해를 입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재해가 누적되면서 대불전은 잃어버려지고, 대불은 16세기 이후 현재와 같은 노좌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경내에는 대불 주위에 56기의 큰 초석이 남아 있습니다. 창건 당시의 대불전은 60기의 초석으로 지탱되었다고 여겨지며, 그 중 56기가 현재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초석의 규모로 보아, 당시의 대불전이 매우 큰 건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재해로 인해 전당은 잃어버렸지만, 대불상 자체는 무너지지 않았고, 그 후 에도 시대 중기에는 유우텐 상인과 양국 상인에 의해 복구·재흥이 이루어져 고도쿠인으로 정비되었습니다.
■ 불상으로서의 특징과 아름다움
카마쿠라 대불은 그 규모의 크기뿐만 아니라, 그 아름다운 조형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곡선으로 이어지는 코선에서 부드럽게 이어지는 눈썹, 조용히 내리깐 수평의 시선, 살짝 미소 짓고 있는 입술은 부드러움과 품위를 겸비하고 있습니다. 사실적인 표현이나 그리스 조각적 요소가 지적되는 등 카마쿠라 시대의 힘과 세련됨이 융합된 모습입니다.
머리 모양인 "라발(螺髪)"은 작은 돌기가 정돈되게 나열되어 있으며, 깨달음을 얻은 자의 지혜를 상징합니다. 미간에는 "백모(白毫)"라고 불리는 흰 소용돌이가 표현되어 있으며, 그곳에서 자비와 지혜의 빛이 발산된다고 합니다. 또한 현재도 표면에 약간의 금박의 잔재가 확인되며, 조성 당시에는 전신이 금색으로 빛났다고 전해집니다.
■ 손의 인상과 불교적 의미
대불의 손은 무릎 위에서 조용히 모아져 있으며, 이는 "상품상생인(上品上生印)"이라는 인상입니다. 아미타여래의 정토에 왕생할 때의 가장 높은 자리를 상징하며, 깊은 명상과 평화로운 깨달음의 경지를 나타냅니다. 불상에는 "삼십이상팔십종호(三十二相八十種好)"라고 불리는 이상적인 신체적 특징이 있다고 여겨지며, 대불의 균형 잡힌 모습에서도 그 아름다움의 요소를 볼 수 있습니다.
■ 문학과 카마쿠라 대불
카마쿠라 대불은 그 아름다움과 위대함으로 인해 많은 문학 작품에 등장해 왔습니다. 시인 요사노 아키코는,
"카마쿠라와 미호토케나레도 석가모니는
미남이 있던 여름 나무 그늘이다."
라는 유명한 노래를 남겨두었으며, 경내에는 이 노래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 외에도 세 기의 문학비가 흩어져 있어, 카마쿠라 대불이 예로부터 문화적·예술적 상징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경내의 볼거리
고도쿠인 경내에는 인왕문에 안치된 힘찬 인왕상이나, 회랑에 걸린 거대한 "대와라지" 등 볼거리가 많이 있습니다. 대와라지는 길이 약 1.8미터, 무게 약 45킬로그램으로, "대불님이 일본 전역을 순회하며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길 바란다"는 기원을 담아, 이바라키현 히타타시의 어린이회에 의해 3년마다 봉납되고 있습니다.
■ 현대에서의 카마쿠라 대불의 의미
조성 이후 750년이 넘은 현재도, 카마쿠라 대불은 국적이나 종파를 초월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불교 동전의 상징으로서의 역할을 하며, 관광지로서뿐만 아니라, 마음을 가라앉히고 손을 모을 수 있는 장소로 많은 참배자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후광산의 푸른 배경을 두고, 약간 앞으로 구부정하게 서 있는 그 온화한 모습은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깊은 평화와 존경을 계속해서 안겨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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